【수필】 험한세상 다리가 되어,....

-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수필가) - 범죄심리사

2021-06-11     김연화 기자
김문석

[서귀포방송/김연화 기자] 제주토박이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배고픔에 시달려 가난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이를 이겨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하여 경찰공무원이 되었다.

이 험난한 세상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빛을 주는 봉사자가 되어 나의 초년시절에 겪었던 삶과 같이 힘들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리라 자처했다.

그래서 시작한 청소년 상담 활동과 병행해 가정에서의 대화 결여 등 갈등으로 각종 일탈 행동을 하거나 학교에서 부적응하는 학생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도활동을 벌였을 뿐만 아니아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소외계층(무의탁 노인, 시설보호 아동 등)을 대상으로 약 30여 년간 아내와 함께 매달려왔다.

서귀포에서 ‘서귀포룸비니청소년상담소’를 개설하고 한해 100여명 정도 일탈한 비행청소년들을 상담하고 있다. 우리 상담소에서는 가출 등으로 가정이나 학교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의뢰를 받고 있다.

어느날 아이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시내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아이들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한 눈에 간파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밥을 한 그릇씩 뚝딱 비우더니 밥을 더 먹어도 되냐고 해서 그러라고 마음껏 먹으라고 했더니 세 학생은 대 여섯 그릇을 뚝딱 치웠다.

사실은 이 학생들이 집에 들어가도 가족의 무관심으로 인한 결핍된 애정 때문에 밥 한끼 제대로 챙겨 먹여줄 사람이 없는 결손가정 아이들로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을 때에 최대한 많이 먹어 두어야 하루를 버틸 수 있다고 하는 처지의 아이들이었다.

그 가운데 특히 영호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가족이라고는 할아버지 밖에 남지 않았는데 현재 암 투병 중이다.

그래서 손주가 언제 혼자가 될지 모른다며 자탄하여 할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신다고 한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소외된 청소년들은 어두운 그늘속에 방황하는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외로운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이후 지속적인 상담으로 아이들의 상처를 보살펴 주고 있으며 그 중 영호는 성인이 될 때까지 친아버지처럼 보살펴 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영호가 쑥스러워 하더니 이제는 ”아빠“하고 곧잘 부른다.

이 아이들과의 상담으로 우리 아이들이 비뚤어지는 이유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은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그 동안 자원봉사활동과 후원 활동을 하면서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중에서도 오래전부터 알코올 중독 증세와 정신분열 등의 질환을 앓고있는 부친으로부터 도끼 등으로 폭행당하며 살고 있던 아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집안 냉장고, 세탁기, 장롱, 밥상 등을 도끼로 찍어 부수고, 95세(당시 나이)의 할머니 멱살을 잡고 돈 내놓으라며 끌고 다니는 등의 폭행을 일삼았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할머니와 함께 부산 고모 집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집에 돌아 왔지만 계속되는 부친 횡포로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집애 남겨두고 아이들은 결국 피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집에 혼자 남겨진 할머니가 걱정되어 아이들은 할머니와 함께 동네 감귤과수원 비닐하우스에서 은신하며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어버지는 학교에까지 찾아와 폭행을 저질렀다. 바로 현장 확인을 한 결과 이 모든 게 사실로 드러났다. 너무도 안타까운 사실에 이 가족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었고 모든 자원을 통해서라도 해결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먼저 아버지의 형사적 처벌보다 정신적 질환을 치료해달라고 했다. 이에 평소 도움을 준 지인을 통해 제주연강병원에 장기 입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주변의 자원봉사자와 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집안 방역소득을 실시했고, 학생들의 학업 성적 향상을 위해 박봉을 쪼개 학원비, 부식비, 생활비 등을 지원해 주었다.

관할 동사무소에 협조를 구해 아들의 폭행으로 시달렸던 할머니의 경우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화장실 등을 신설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기도 했다. 입원중인 부친은 많이 호전되어 지금은 아이들이 두렵기만 하던 아버지를 자유롭게 면회한다고 한다.

그 이후 퇴원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선도와 보호해 주었고, 현재까지 약 12년간 아이들의 가정을 수시로 방문하며 상담과 지원활동은 물론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할머니는 이제 눈을 감아도 손자들을 맡아줄 새 아들이 있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반복하면서 기뻐해 하며 아이들은 자신들도 커서 꼭 성공해 삼촌같이 우리 사회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도와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결과 오늘날 남동생은 제주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해 건축사 활동을 하고, 누나는 제주대학교 인문사회학과를 졸업해 여자경찰관으로 당당한 삶을 살면서 사회에 꼭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나가고 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을 위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이유였다고 생각하니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뿌듯했다.

지금까지 우리 이웃에서 소외를 받으며 주린 배를 움츠리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이어주기 위해 오늘도 어렵고 힘든 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청소년 상담 및 선도활동, 한해 300∼400여 명의 청소년들과 함께하면서 학교와 가정 등에서 청소년범죄 가담 등 일탈행위로 얼룩진 청소년들에게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며, 우리나라 미래 우수한 인적자원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은 행복이고 그게 바로 멈출 수 없는 봉사자의 이유라는 굳건한 신념으로 살아왔다.

보이지 않는 나의 마음의 텃밭에는 우리 미래의 꿈나무인 청소년들이 다양한 ‘인人꽃’으로 파릇파릇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