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칼럼] 하늘에 드리는 제사
조석준 칼럼니스트. 국내 최초 기상전문기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지속경영교육원장. 제9대 기상청장(2011.2~2013.3). 전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위원. (사) 한국신문방송인클럽 회장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면에서는 날씨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장마철만 되면 너무나 많은 비가 내려 엄청난 홍수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세계 곳곳의 사막에서는 물이 부족해서 오아시스의 샘물로도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뭄이 들었을 때 비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 같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나라마다 독특한 양식으로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지난 1988년 사상 최악의 가뭄이 미국 전역을 휩쓸었을 때, 오하이오 주의 한 화초 재배업자는 2,000달러를 주고 인디언 주술사를 불러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인디언 주술사는 불붙은 석탄을 입에 대고 주문을 외는 등 전통적인 방법으로 의식을 거행했다고 하는데 그 뒤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미국의 다른 지방에서는 기우제의 일종인 〈도도라>라는 의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이 기우제에서는 맨몸의 소녀들이 머리에서 발끝 까지 꽃과 풀로 장식을 한 다음 춤을 추면서 마을을 한 바퀴 돈다. 그러면 방문하는 집에서는 이들에게 물을 뿌리면서 비를 기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중앙아시아의 네팔 왕국에서도 맨몸의 여인들이 논밭에서 일을 하면서 비를 기원하는데, 이 같은 기우행사는 해가 진 뒤에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벼농사 국가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기우제가 성행했던 지역이다. 우리 선조들은 가뭄현상이 귀신의 조화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라 여기고, 이 귀신을 즐겁게 해주거나 또는 위협해서 물러가게 하는 형식의 행사를 거행했다. 우리나라의 기우제는 서기 227년 백제의 구수왕이 기우제를 지내고 효과를 본 뒤부터 시작됐다고 하는데, 삼국시대 이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장장 1,800년 동안 이어져 온 의식이다.
기우제는 그 후에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조선 성종 때의 기록에 따르면, 한 번의 기우제를 치르는데 100여 명의 스님들이 모여 기원을 하고 또 수많은 군중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또한 기우제를 지낸 뒤에 비가 오면 행사를 주관한 절에 대해서도 많은 혜택이 주어졌다고 한다.
조선 중기부터는 유교사상이 깊어지면서 가뭄에 대한 해석도 유교식으로 바뀌어진다. 조선 성종 13년인 서기 1482년 홍천사에서 기우제를 지낸 뒤에 비가 많이 내려서 관례대로 나라에서 많은 상을 내렸는데, 이때 유생들은, 비가 온 것은 불사의 기우제 때문이 아니고 임금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이처럼 불교식의 기우제가 시들해진 뒤부터는 토속신앙에 의한 기우제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이때 신앙의 대상물은 흙으로 빚은 토룡이나 종이에 그린 용 이었다. 용은 동양권에서는 비를 만들 수 있는 영험한 동물로는 최고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우제 방법은 지금까지도 전해져서 일부 지방에서는 지방의 민속 문화재로 남아 있다.
아무리 첨단의 과학시대라고는 하지만 가뭄현상을 극복한다는 것은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대자연에 대해서는 항상 경건한 마음을 가지면서, 물을 비롯한 모든 자원을 아끼는 습관이야말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기우제가 될 것이다.